정의
다른 이름: 히피족, 히피 룩, 플라워 칠드런, Hippy, Flower children
히피는 1960년대 중반 미국에서 나온 반문화 운동이자 그 씬의 문화다. 긴 머리에 밑이 넓게 퍼지는 벨보텀과 타이다이 셔츠를 입고, 샌들과 헤드밴드, 구슬 목걸이와 평화 표지로 몸을 꾸민다. 인도의 쿠르타와 카프탄처럼 다른 문화의 옷도 이 차림에 들어왔다.
평화와 사랑과 개인의 자유를 앞세워 기성 제도와 중산층의 가치를 거부했고, 공동생활과 채식, 동양 철학의 수용, 베트남 전쟁 반대도 이 문화의 일부였다. 이름은 「알아채는」을 뜻하는 재즈 은어에서 왔다는 설명이 있고, 1965년 샌프란시스코의 한 기자가 새 비트 세대를 이 말로 가리켰다.
샌프란시스코의 헤이트애시베리가 이 문화의 중심이었다. 1967년 여름에는 약 10만 명이 이 도시를 찾았고, 1969년 우드스톡에는 약 50만 명이 모인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매체는 2021년 하이패션이 이 차림을 다시 다뤘다고 쓴다.
꽃무늬 원피스나 벨보텀을 입은 것이 이 씬에 속한다는 뜻은 아니다.
특징
1960년대 중반 미국에서 나온 반문화 운동이고, 평화와 사랑과 개인의 자유를 앞세워 기성 제도와 중산층의 가치를 거부한 씬이다. 옷에서는 여러 문화의 복식을 함께 쓰는 것이 특징이다. 위키피디아는 네팔·인도·발리· 모로코와 아프리카 나라들의 전통 의복이 이 시기 차림의 참조 대상이었다고 쓴다. 엘르 코리아는 이 차림이 사회 규범에 반기를 들고 개방적인 문화와 정치적 성향까지 드러낸 것이라고 설명한다. 꽃무늬 원피스나 벨보텀을 입은 것이 이 씬에 속한다는 뜻은 아니다. 2021년 하이패션이 이 차림을 다시 가져간 것은 씬 밖의 일이다.
시각 요소
긴 머리와 밑이 넓게 퍼지는 벨보텀 청바지, 타이다이 셔츠가 대표적인 모습이다. 위키피디아는 남녀 모두 밑단이 해진 벨보텀을 입었다고 쓰고, 예수 샌들과 헤드밴드, 판초와 모카신, 러브 비즈와 평화 표지, 메달 목걸이와 체인 벨트를 함께 든다. 인도의 쿠르타와 카프탄 같은 다른 문화의 옷도 이 차림에 들어왔다. 꽃과 구슬, 깃털, 종으로 몸을 꾸민 모습이 이 씬의 이미지로 알려졌다. 엘르 코리아는 맨발과 자유분방한 머리, 페이즐리 무늬 원피스와 커다란 선글라스를 이 차림의 요소로 든다.
배경
1960년대 중반 미국에서 나왔고 샌프란시스코의 헤이트애시베리 동네가 중심이었다. 평화와 사랑을 앞세운 이 문화에는 공동생활과 채식, 동양 철학의 수용, 베트남 전쟁 반대, 성 해방도 있었다. 이름은 「알아채는, 아는」을 뜻하는 1940년대 할렘 재즈 은어 「힙」에서 왔다는 설명이 있다. 다만 「히피」라는 말은 1965년 이전에도 쓰였다. 위키피디아는 1961년 4월 27일 노먼 메일러가 빌리지 보이스에 쓴 글의 용례를 든다. 1965년 9월 5일에는 샌프란시스코의 기자 마이클 팰런이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에 「비트닉을 위한 새로운 낙원」을 쓰며 새 비트 세대를 이 말로 가리켰고, 위키피디아는 이를 서해안에서의 첫 사용으로 적는다.
헤이트애시베리에서는 문을 닫은 극장의 의상 재고를 사서 주중 공연에 입고 나갔다. 1967년 1월 휴먼 비인에 2~3만 명이 모였고, 같은 해 여름 「사랑의 여름」에 약 10만 명이 샌프란시스코를 찾았다. 위키피디아는 1967년부터 젊은이의 문화가 모드에서 더 느슨한 히피·보헤미안 쪽으로 옮겨 갔다고 쓴다. 1969년 8월 15일부터 18일까지 뉴욕주 베설에서 열린 우드스톡의 참가자 수는 공식 집계가 없으며, 현장 박물관은 약 50만 명으로 추정한다. 같은 해 12월에는 알타몬트 무료 공연이 있었다.
옷을 손수 만들어 파는 사람들도 이 씬 안에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미술관 자료는 진 로즈가 1966년 「페르시안 나이츠」 드레스를 실크 시폰과 인쇄 면으로 만든 것을 들고, 시장의 옷이 대개 폴리에스터이던 때에 그가 천연 소재와 수공 제작, 편안함과 개인의 개성 표현을 중시했다고 쓴다. 같은 자료는 그가 제퍼슨 에어플레인과 그레이트풀 데드 같은 밴드의 음악가들에게 맞춤 주문을 받았다고 적고, 버레이 올슨도 같은 밴드들의 음악가에게 주문을 받았다고 쓴다. 엘르 코리아는 이 문화를 물질 문명에 맞선 집단으로 설명하며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로 시기를 잡고, 2021년 1970년대 패션이 하이패션에 영감을 준 흐름 속에서 디올·구찌·에트로·발렌티노가 이 차림을 다시 다뤘다고 쓴다.
아이템
벨보텀 청바지, 타이다이 셔츠, 샌들, 헤드밴드, 판초, 카프탄, 프린지 장식, 러브 비즈
전형
헤이트애시베리 Haight-Ashbury
샌프란시스코의 동네. 1960년대 중반 이 문화의 중심이었고, 문을 닫은 극장의 의상 재고를 사서 공연에 입고 나가는 일이 여기서 있었다
우드스톡 페스티벌 Woodstock Festival
1969년 8월 15일부터 18일까지 뉴욕주 베설에서 열린 음악 축제. 현장 박물관은 공식 집계가 없다고 적고 참가자를 약 50만 명으로 추정한다. 이 씬이 한자리에 모인 대표적인 사건이다
사랑의 여름 Summer of Love
1967년 여름 약 10만 명이 샌프란시스코를 찾은 일. 같은 해 1월 휴먼 비인에는 2~3만 명이 모였다
진 로즈 Jeanne Rose
히피 차림의 옷을 손수 만든 디자이너. 샌프란시스코 미술관 자료는 1966년 「페르시안 나이츠」 드레스를 들고, 시장의 옷이 대개 폴리에스터이던 때에 그가 천연 소재와 수공 제작, 편안함과 개인의 개성 표현을 중시했다고 쓴다. 제퍼슨 에어플레인·빅 브라더 앤 더 홀딩 컴퍼니·그레이트풀 데드의 음악가들이 그에게 맞춤 주문을 했다
벨보텀 청바지 Bell-bottoms
밑이 넓게 퍼지는 바지. 위키피디아는 1967년 이후 남녀 모두 밑단이 해진 벨보텀을 입었다고 쓴다
타임라인
- 1961-04-27
- 노먼 메일러가 빌리지 보이스에 쓴 글에서 「히피」라는 말을 쓴다
- 1965-09-05
- 기자 마이클 팰런이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에 「비트닉을 위한 새로운 낙원」을 쓰며 새 비트 세대를 「히피」로 가리킨다. 위키피디아는 이를 서해안에서의 첫 사용으로 적는다
- 1967
- 「사랑의 여름」에 약 10만 명이 샌프란시스코를 찾는다. 젊은이의 차림이 모드에서 히피·보헤미안 쪽으로 옮겨 간다
- 1967-01
- 샌프란시스코 휴먼 비인에 2~3만 명이 모인다
- 1969-08
- 뉴욕주 베설에서 우드스톡 페스티벌이 열린다(8월 15~18일). 공식 집계는 없고 약 50만 명으로 추정된다
- 1969-12
- 알타몬트 무료 공연이 열린다
- 2021-05
- 엘르 코리아가 1970년대 패션의 영향 속에서 디올·구찌·에트로·발렌티노가 히피 차림을 다시 다뤘다고 보도한다
구별
둘 다 기성 질서를 거부하는 태도에서 나온 문화이지만 그 태도를 옷으로 드러낸 방향이 달랐다. 1960년대 미국 히피와 1970년대 중반 영국 펑크의 대표적인 차림에서 그 차이가 보인다. 히피는 평화와 사랑을 앞세워 꽃과 구슬, 밝은 색과 흐르는 형태를 쓰고 여러 문화의 복식을 받아들였다. 펑크는 찢은 옷과 안전핀, 가죽과 체인으로 도발적인 모습을 만들었다. 펑크 전체가 그렇지는 않다. 미국의 라몬스나 1980년대 하드코어는 티셔츠·청바지처럼 평범한 옷을 입었다. 두 씬은 시기와 지역도 다르다.